*이 글은 스토브인디 크리에이터즈 활동을 통해 제공받은 게임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은 전설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 화면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스타크래프트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다. 어둡고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 속에서 그 게임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게임에 대해 잘 알 수 없다. 사실 이것은 RTS(Real-Time Strategy, 실시간 전략) 장르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실시간이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게임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며,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이러한 장벽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들은 문제점임과 동시에 RTS의 매력 포인트이기 때문에 다시 문제가 생긴다. 아예 다른 게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장르이던지 게임은 더 많은 게이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발전해야 한다. 타 장르들이 여러 장르와의 화합을 꿈꾸거나, 좀 더 발전된 장르 성향을 갖추는 동안 RTS는 그만의 고유한 장르를 구축하는데 심취했다. 사실 그 정도가 과했다. 워크래프트(War Craft,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Age of Empire,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더욱 세세한 설정을 짜는데 집중했다. RTS 장르의 쇠퇴의 원인을 찾자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상세하게 짜인 설정은 플레이어의 피로를 불러올 뿐이었다. 게임 내내 집중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플레이 시간을 가진 게임이 다른 장르들과 비교해 이길 수 있을 것인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RTS 시장에 혜성과 같은 게임사가 등장한다. 모바일 게임 개발사인 슈퍼셀(Super Cell)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게임은 “클래시 시리즈(클래시 로얄, 클래시 오브 클랜)”이다. 각각 2012년도, 2016년도에 발표된 게임으로 RTS 장르를 바탕으로 디펜스나 CCG 요소를 추가해 기존의 정통 RTS와는 크게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이에 유저들은 5억 이상 다운로드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선물했다. 클래시 시리즈와 기존 RTS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 두 요소이다.
첫 번째, 짧아진 플레이타임이다. 30분 정도는 우습게 생각하는 RTS 장르이면서도 플레이타임을 축소시킨 이유는 결국 흥행이다. 우선 복잡한 조작을 필요로 해 PC 게임 이외에는 잘 개발되지 않던 RTS 시장에서 단순한 모바일 기기가 메인인 게임을 개발해 주목도를 높였다. 이 점에서 조작성과 이미 유리한 곳을 선점한 슈퍼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형 단순화와 제한 시간 룰을 추가해 흥행에 쐐기를 박았다. 캐주얼한 게임이 주를 이루는 모바일 시장에 발맞춰 플레이타임이 비교적 짧은 타 장르의 요소를 합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이를 통해 전략적인 측면을 더 강화하는 동시에 유저들의 피로도를 감소시켰다.
두번째, 발랄한 그래픽을 사용했다. 전략 게임, 특히 전쟁 등의 무거운 스토리를 사용하는 게임은 플레이어들에게 더욱 몰입감을 주기 위해 사실적인 그래픽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안 그래도 심각한 스토리가 더 심각하게 느껴지게 되고 마이너틱한 분위기를 낸다. 라이트 유저들의 유입 요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의외로 그래픽이다. 슈퍼셀의 누구나 즐길 수 있고 거부감이 적은 아트웍은 장르의 부흥과 같은 유저 증가를 불러왔다.
이러한 흥행과 함께 등장한 또 하나의 게임이 있다. 에스토니아의 인디 게임 개발사 Luminous의 RTS PC 게임, “써클 엠파이어(Circle Empires, 2018)”가 바로 그것이다. 개발 국가가 상당히 생소할 수 있으나, 2019년도를 휩쓸었던 오픈월드 추리 RPG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의 개발사와 같은 나라라고 한다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는 “써클 엠파이어”를 통해 ‘RTS의 현주소’를 알아볼 수 있다.
써클 엠파이어는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실시간 전략 대전 시뮬레이션 (RTS) 게임입니다.
- 써클 엠파이어 내 세계는 서로 연결된 써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써클에는 획득할 수 있는 전리품과 물리쳐야 할 적이 존재합니다.
- 작은 왕국의 권력을 갈망하는 신적인 지도자가 되어 보세요. 기술을 사용해 점점 더 강력해지는 쓰러뜨리고 제국을 확장해 보세요.
- 플레이할 때마다 게임 세상이 변화합니다. 똑같은 게임을 두 번 하게 되는 지루함이란 있을 수가 없죠!
- 그리고... 호박도 기를 수 있답니다
게임의 장점들 나열과 잊지 않는 마지막 한 줄 개그는 이제 게임 광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나 보다.
위 문구들은 써클 엠파이어의 메인 홍보문구로 요약하면,
1. 단순한 그래픽
2. 적당한 설정의 양
3. 다양한 모드와 난이도
로, 이 요소들을 셀링 포인트로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플레이해보아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스토브에서 다운로드하여 게임을 플레이해 보았다.
-단순한 그래픽
써클 엠파이어는 분명 전쟁을 소재로 하는 정통 RTS 게임이지만 단순한 그래픽을 선택했다. 전체적인 통일성을 주되, 색상이나 뚜렷한 소품을 사용해 유닛간의 구분을 쉽게 만들었다. 실제로 플레이를 진행하면서 여타 게임들이 유닛의 모양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하는 것을 생각하면, 라이트 유저들의 유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적당한 설정의 양, 다양한 모드와 난이도
써클 엠파이어에서의 목적은 모드마다 다르지만 큰 틀은 같다.
내 써클이 아닌 곳을 점령하는 것!
뚜렷한 스토리 라인을 없애고 전투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플레이어가 게임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줄였다. 써클 엠파이어 아이콘의 K씨(가명)가 얼마나 힘겨운 인생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우리가 알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심오한 스토리를 좋아하는 유저들에게는 나쁜 소식일 수 있지만, 막상 플레이 해 보면 게임의 설정파트에서 읽을 거리가 많아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반대로 생각하면, 기존의 RTS에 비해 정보량이 적어져 고려할 사항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소 뻔한 플레이가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어쩌면 이 부분이 캐주얼 RTS를 지향하는 써클 엠파이어가 풀어야할 최대의 과제였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써클 엠파이어가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더 엄격해진 전장의 안개"와 "다양한 난이도 설정"이다.
전장의 안개 개념은 워크래프트 2의 반투명 안개 시스템을 떠올리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아직 정찰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지 않는 시스템으로 지형이 중요한 승리 요인이기도 한 RTS 장르에서는 중요한 개념이다. 써클 엠파이어는 말 그대로 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임이고, 전체 맵의 형태는 정사각형으로 고정되어 있다. 때문에 지형에서 오는 난이도를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써클 엠파이어의 전장의 안개는 한 층 더 강력하다. 내가 방문한 써클을 기준으로 상하좌우의 써클 상태만 확인할 수 있되, 이어지지 않은 써클의 상황은 파악되지 않는다. 써클의 안개가 걷히는 순간, 그 써클의 주인과 그 전투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써클 탐색은 승리의 요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연결되지 않은 써클의 동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성가신 요인이었다. 실제로 플레이 해 본 결과, 이 부분이 가장 까다로웠다. 어디에서 그 써클과 연결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보다 빨리 그 루트를 찾아낸다면 치명적인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써클 엠파이어의 몬스터 사냥 모드는 난이도 설정이 '쉬움-일반-베테랑-초고수-악몽-불가능'의 6단계를 거치며 점점 어려워진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스스로 대략적인 플레이타임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맞춤형 RTS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가볍고 빠른 전개를 원하는 유저는 낮은 난이도를, 심도 있고 열정적인 컨트롤을 원하는 유저는 높은 난이도를 고르면 된다. 게임의 뛰어난 리플레이성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스타크래프트부터 시작해 클래시 시리즈의 성공을 통해 현대의 게임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까지 살펴보았다. 어느새 PC보다도 보급률이 높아진 모바일 기기에서의 트렌드가 타 플랫폼들의 트렌드까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생각하면, 써클 엠파이어는 그 많은 요구들을 적절히 버무려 낸 게임일 것이다.
전반적인 후기를 쓰자면 사실 필자는 RTS 게임을 아주 즐겨하는 편은 아니다. 전략 게임은 좋아하지만 실시간으로 무언가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있으면 멘탈을 잡기 어려운 타입이라 턴제 전략 게임을 좀 더 자주 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실 스타크래프트나 다른 게임들도 취향이 아닌 편인데, 써클 엠파이어는 그래픽에서부터 내가 알던 RTS와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생각보다 할만할지도...? 에서 시작한 플레이는 어느새 한 시간, 두 시간을 넘었다. 많이 재밌었다. 깊은 이해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게임 시스템과 가벼운 그래픽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하다 보니 좀 더 심도 있게 계산(육지와 바다에서의 가드 부대 이동속도 차이 등)까지 해가며 게임을 즐겼다. 그 감상을 바탕으로 이 리뷰를 작성했으며, 이 리뷰를 작성한 다음에도 좀 더 플레이하러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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